2008. 8. 19. 09:40

[감독]_이준익 감독의 영화세계

08.08.06.
CGV 월례행사인 "VIP 멤버쉽 회원에게 포인트 2배" 행사에 언젠가 꼭 한번 참여해 보고 싶었다.

매력을 느낀 배우는 아니었지만,
영화처럼 드라마틱한 결말에 관전자적 궁금증을 느끼게 된 '히스레저의 유작' 은 일찍이 마감되고 없었다.  

"님은 먼 곳에"를 보기로 했다.

보지말아야지 보지말아야지 하면서도,
spoiler로 가득 차 다 보여주고 마는 M본부 영화여행을 몇 주전 일요일에 함께 한지라 흥미는 반감된 상태였지만,
평소 이준익 감독 영화에 찬사까지는 아니더라도 만족할만한 뒷끝을 보인터라 차선책으로
"님은 먼 곳에" 가 아닌 "이준익 감독의 영화" 를 선택했다.

(딴 이야기지만, 영화 광고사들은 왜 지독한 spoiler를 쏟아버리는 걸까? 적당히 하는게 좋을텐데..
7,000원을 내고 영화관의 스크린을 설레는 마음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에게는
매번 되풀이되는 장동건의 vluu 광고가 아닌 신선한 자극이 필요하다.)

먼저 이준익 감독에 대해 알아보자.

1959.9.21 生
서울 출신이며 現 씨네월드 대표이사로 재직중이다.
세종대학교 회화학을 전공했으며 1993년 영화 '키드캅'을 통해 데뷔했다.

그가 감독한 영화는 다음과 같다. (기획, 제작 제외)

1993 키드 캅
2003 황산벌
2005 왕의 남자
2006 라디오 스타
2007 즐거운 인생
2008 님은 먼 곳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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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드 캅" 의 경우 아주 어릴 적 봤던 영화로 김민정과 정태우가 나온다는 것 정도밖에 기억이 나지 않으니 패스.
게다가 감독으로 주로 활동하기 시작한 2003년 영화 황산벌까지 10년간의 긴 텀이 있으므로 패스.

그의 영화는 일단 "다른" 주인공, "다른" 공간, "다른" 시선에 집착한다는 공통 분모를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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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황산벌",

이 영화의 목적이 역사 되짚어 보기, 역사 뒤집어 보기, 그 속의 해학과 웃음 찾아내기였던만큼
영화는 시종일관 비극적으로 전해지는 전쟁 중의 역사를 희극적으로 묘사한다.
이 영화에서 가장 눈길을 끈 것은 세기를 대표할만한 한판 전투가 아니라,
거시기로 대표되는 이문식을 위시한 조연들의 애드립과 걸쭉한 사투리, 김선아의 찢어질듯한 잔소리 열전이었다.

well made 역사극이라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실컷 웃긴 했지만 남는 것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목적한 역사 뒤집어 보기가 그럴듯하게 실현되지도 못했다.

하지만, 이 곳에서 이준익은 새로운 출발점을 갖는다.
"황산벌" 은 계백과 김유신 외에 수 많은 조연을 낳았으며, 수 많은 조연 하나하나의 눈으로 관객을 마주한다.
관객은 주연인 두 사람에게서 벗어나 의자왕, 거시기 등 많은 조연과 교감할 수 있는 기회를 맞이한다.
따라서 이 영화의 주연은 "계백" 도 "김유신" 도 아닌 그 시대 각자의 삶을 살아가던 다양한 인간 군상이다.

감독으로서 정진영이라는 persona와 시작하는 첫 여행의 시발점이라는 사실은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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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우리 모두에게 제대로 각인시킨 영화는 "왕의 남자" 였다.
"왕의 남자" 가 들려주는 비극은
"황산벌" 과 "왕의 남자" 이준익이 같은 사람이라는 사실에 적잖은 의문을 갖게 한다.
하지만, 보면 볼 수록 그 "이준익" 은 이 "이준익" 임에 틀림없다.

사실 "왕의 남자" 가 이준익 감독의 첫 작품이라 착각했으며,
그가 이전 꽤 오랜 기간 동안 영화계에 몸 담고 있었음을 당시에는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음을 고백한다.
(이전의 그는 남들은 몰라도 내게 있어서는 "봉미미" 였다.)

영화는 이전 연산군 시대를 조명한 영화처럼 연산군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비추지 않는다.
그는 그저 한 사람이다. 어찌 보면 그의 비중은 처선 "장항선" 만도 못하다.
(결국 처선은 "왕과 나" 라는 S본부의 드라마에서 주연 자리를 꿰차기도 한다.)
그는 광대의 손에 놀아나기도 하고, 광대에게 어쩔줄 모르는 질투를 느끼기도 하는 못난 사람이다.

시대의 요부 "장녹수" 역시 연산군만은 못하지만 영화, 드라마에서는 한 가닥하는 인물이다.
하지만, 그녀 역시 이 곳에서는 영화의 중심도 세상의 중심도 아닌, 또 하나의 인물이다.

이준익 감독은 "다른" 주인공, "다른" 공간, "다른" 시선을 보여주는 실험을 이제 제대로 시작한다.
이 영화에는 두 사람의 "광대" 가 출현한다.
왕을 비웃는 광대, 왕을 사로잡는 광대.
영화계의 아웃사이더, 생판 남같은 광대 "감우성" 과 "이준기" 는 마음껏 관객의 마음을 희롱한다.
카리스마로, 당당함으로, 긴장감으로, 앙칼진 눈웃음으로.
(이 영화를 통해 두 광대는 이후 지금까지 그들 자신의 필모그래피를 점차 화려하게 장식해오고 있다.)

이들 광대는 왕도 가지지 못한 자유로운 영혼과 열정이 있었다.
이준익이 전하려 하는 진정한 카타르시스는 이 영화를 통해 드디어 진정성을 갖고 관객에게 전해지기 시작한다.
영화는 "광대" 가 주인공이고, "광대의 놀이판" 이 무대고, "광대의 시선" 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왕의 남자" 역시 이문식을 대신할
유해진, 정석용 등 이준익 감독의 해학을 전할 또 다른 영혼들이 자리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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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익 감독의 걸작 중 하나인 "라디오 스타"
아날로그적 진부한 감수성을 뽐내며 코끝 찡한 잔잔한 감동으로 승부한
이 영화는 풍부한 삶의 페이소스를 연출한다.

코믹 캅스 커플 "안성기" 와 "박중훈"
이번에는 전성기 지난 찌글찌글한 스타와 그래도 그가 최선이라 여기는 어리숙한 매니저 역할로 돌아왔다.

혹자는 "진부" 라는 두 글자 틀에 이 영화를 끼워 맞추며, 혹평을 서슴치 않는다.
감독의 지긋지긋한 아날로그적 감성이 영화 곳곳에 내재한다는 악평도 있다.
그런데 어쩐다, 그것이 바로 "아날로그적 감성" 이다.
뭔가 깔끔하지 못하게 추적거리고, 걸핏하면 눈물 바람에 온갖 궁상맞은 세상사 이야기..
그 속에 삶이 있고,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고, 사람이 있다.

영화에는 청록다방 김양을 비롯한 온갖 군상의 삶이 녹아져있다.
물론 '언제나 나를 최고라고 말해준 당신이 있어 행복합니다.' 라는 카피에서 전해지는
철없는 스타와 그의 곁을 그림자처럼 일편단심 지키는 매니저의 이야기가 중심 축을 이루지만,
한물은 고사하고 세물, 네물은 더 간 자아도취적 왕년의 스타가
영월 지역민의 삶을 소개하고 그들의 삶과 애환, 넋두리를 함께하면서 재기에 성공하게 된다는 스토리는
단순한 스타와 매니저의 이야기에서 나아가 훨씬 더 많은 것을 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미 이 영화의 수 많은 조연들의 이야기는 주연을 빛내는 장치를 넘어
영화 자체를 다채롭게 만드는 하나 하나 소중한 씨줄, 날줄인 것이다.
이것이 이 영화가 단순히 "진부" 라는 말로 평가받을 수 없는 중요한 이유이며,
이준익 감독의 대표적 영화가 될 수 있는 이유이다.

이 영화.. 또 한번 잘 봐야 한다.
이병우 음악감독과 함께한 왕의 남자 역시 영화 전반에 대단한 음악적 시상이 잘 표출되어 있지만,
(그는 정말 대단하다. 당시 화제를 일으킨 왕의 남자, 괴물, 호로비츠를 위하여.. 이 모든 영화의 음악감독이었다.)
앞으로 전개될 이준익표 영화의 또 하나 특징 "음악" 을 수면위로 대놓고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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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인생" 은 이준익 감독의 아날로그 시리즈 연작과도 같은 작품이다.
이곳에는 피곤한 가장이 너무나 많다.

그들은 피곤하지만 큰 소리 한번 칠 수 없는 가장들이다.
이들 역시 다른 영화들에서 주인공 행세하긴 힘든 인물들이다.

선생인 마누라에게 얹혀살면서 큰소리 한번 제대로 못 치는 놈,
기러기 아빠로 살면서 보고싶다는 전화 통화 만으로 가족의 존재를 (동시에 부재를) 확인해야 하는 놈,
퀵 서비스에 대리 운전에 자식들 학원비때문에 몸이 부서져라 뛰어 다녀야 하는 놈,
젊디 젊지만 밴드하던 아버지 밑에 남은 것이라곤 열기 하나밖에 없는 그나마도 있던 아버지 마저 잃은 어린 놈..

이 불쌍한 네 존재가 이 영화를 이끄는 힘이다.
(힘이라고 하기에 그들은 너무 무력하고 존재감이 없다.)

모르겠다. 그냥 한번 저질러 볼란다. 뭐 어떻게 되겠지. 나도 좀 나 하고 싶은대로 한번만 살아보자.
더도 말고 한번만 좀 나 좀 내버려둬라.
이들은
철없지만, 왠지 내 곁을 몇 번 스치며 지나갔을 법한
아니면 회사 내 옆자리를 차지하고 앉았을 법한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익숙한 철부지 아버지들이다.

밴드 이름은 기가 막히다. "활화산", "an active volcano"
아, 기가 막히다.
정말 액티브한 기운이 넘치고, 살아 숨쉬는 몇 줄기 붉은 화염이 폭발할 것만 같다.
힘없던 이 이들은 과거의 락밴드 "활화산"을 재결성한다.

그리고, 이 아버지들은 어울리지 않게 예쁜 문신까지 새겨가며
인생의 열정을 되찾고 나름의 해피엔딩을 맞이한다.
(아, 사적인 감정이긴 하지만 나.. 배우 김윤석의 부스스한 머리와 때깔 없는 사투리가 너무 좋다.)

이준익 영화에 다시 한번 출연한 persona 정진영은
그의 영화 속에서 늘 그렇듯
주연이되 조연이며, 조연이되 주연이다.
그는 영화 전반의 완급을 조절하는 힘을 휘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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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현재진행형의 종착점에 이르렀다.
"님은 먼 곳에".. 정말 먼 길을 돌아 이제 "님은 먼 곳에" 에 도착했다.

이 영화는 날카롭게 말해 감독이 원하는 것에 훨씬 못 미친 영화다.

이준익 감독은 이 영화에서
베트남전쟁에 참전했던 남성이 아닌 그 남성에 의해 남겨졌었던 여성의 시각을 통해
전쟁과 그에 수반된 여러 일련의 사건들을 그리려 했다.
그리고 그 의지는 나름대로 관철되어 나쁘지 않은 결과를 가져왔다.

하지만, 거기까지 족했다.

"니 내 사랑하나?" 로 시작되는 사랑에 대한 끝없는 의문과 고민은
이 시대 오히려 너무 낭만적이었을테고,
남성중심적이었던 세상에 대한 여성의 통렬한 비판을
마지막 장면의 따귀 몇대로 산정하기에는 지극히 부족함에 틀림없다.

이 영화 속에서 관객은 차라리 "왜?" 라는 의문을 지워야 한다.
사랑하지 않는 남편을 찾아 무작정 베트남에 이르렀던 이유도,
남편을 찾아간 세상에서 오히려 남편이 아닌 수 많은 남성의 욕망의 대상이 되었던 이유도,    
왜 하필 김추자였는지도,
남편을 만나 따귀를 철썩철썩 때려야만 했던 이유도..
그냥 묻어둬야 한다.

이 영화는 그다지 친절하지 않다.
친절하고 싶었는데, 할 말이 없어 친절하지 않았던 것일 수도 있다.

한편으로 영화는 트릭에 가득 차 있다.
영화는
혹시 "님을 먼 곳에" 라는 주제가를 먼저 산정한 것이 아닐까 의문이 생길만큼 스토리 구조가 촘촘하지 못하다.
(그래서 남편 상길을 베트남으로 보내 버린 것이 아닐까? 님이 멀리 있어야만 하니까.)
또 이 영화는
혹시 무작정 "수애" 를 주연으로 내세우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의문이 생길만큼 스토리 구조가 촘촘하지 못하다.
(노래 부르고 춤추면서 수애, 순희, 써니는 영화의 50% 이상을 짊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3가지 아날로그 음악 연작 시리즈 중 가장 긴 여운을 준다.

"김추자 할까요?", 김추자의 "님의 먼 곳에" 가 그렇고,
써니의 빨간 원피스가 그렇고,
"니 내 사랑하나?" 가 그렇다.

이준익 특유의 "다른" 주인공, "다른" 공간, "다른" 시선이 적나라하게 묘사되어서 일게다.

엔딩이 닥쳐오는 시점에서 나도 모르게 몇 방울의 눈물을 떨구고 말았지만,
왜? 라는 의문을 갖기 전에,
여성성이 남성성에 대해 분노를 표출하는 따귀를 생각하기 전에,
그냥 좀 "그녀" 의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여유를 갖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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