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3. 22. 09:24

[소설]_"그것이 세상이다", 공무도하

공무도하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김훈 (문학동네,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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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을 건너지 말랬어도
기어이 건너려다 빠져 죽으니
어찌하랴 님을 어찌하랴

- 여옥. 사랑아, 강을 건너지 마라


나는 나와 이 세계 사이에 얽힌 모든 관계를 혐오한다.
나는 그 관계의 윤리성과 필연성을 불신한다.
나는 맑게 소외된 자리로 가서, 거기서 새로 태어나든지 망하든지 해야 한다.
시급한 당면 문제다.

나는 왜 이러한가. 이번 일을 하면서 심한 자기 혐오에 시달렸다.
쓰기를 마치고 뒤돌아보니, 처음의 그 자리다. 남은 시간들은 흩어지는데, 나여, 또 어디로 가자는 것이냐.

- 김훈

인간은 비루하고, 인간은 치사하고, 인간은 던적스럽다. 이것이 인간의 당면문제다.

- 장철수, 소설 속에서

문정수
한국매일신문 사회부 기자.
기르던 개에게 물려 죽은 소년의 어머니를 찾기 위해
십 년 전 군인으로 복무했던 해망을 찾은 것을 시작으로
해망방조제에서 벌어진 교통사고, 해망방조제 도로 개통, 해망 해저 고철 인양사업 등을 계속 취재하며
해망과의 질긴 인연을 이어간다.

노목희
지방대학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창야중학교의 미술교사로 있다가
가끔 만나던 선배인 장철수가 창야에서 사라진 다음해 고향을 떠나 서울로 와서 출판사에 근무한다.
가끔 문정수가 야근을 마친 새벽에 찾아와 혼자 중얼거리듯 늘어놓는 세상의 이야기들을 들어준다.

장철수
창야에서 농과대학을 졸업하고 취직한 후에도 노학연대 근처를 서성대다,
경찰서에 연행되어 노학연대 집행부 일급 수배자들의 은신처를 자백하고 풀려난 뒤 해망으로 떠난다.
후에와 함께 물밑 펄에 널려 있는,
미군 폭격기와 전투기 들이 쏟아낸 포탄 껍질과 탄두를 건져올려 팔며 살아간다.

박옥출
서울 서남소방서 인명구조특공조장 소방위.
캐피털백화점 화재현장에서 귀금속 매장의 보석과 금붙이 들을 빼돌리고
육 개월 후 신장병을 이유로 소방서에서 퇴직한다.
그후 해망으로 가서 해저 고철 인양사업을 추진하는 업체의 전무이사가 된다.

오금자
남편과 이혼한 후 치매 초기증세를 보이는 어머니에게 어린 아들을 맡기고 혼자 고향으로 내려가 식당에서 일하다,
텔레비전 뉴스로 아들의 죽음을 알게 된다.
그후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이 없는 곳에서 지내다 방천석을 만나,
그의 가옥과 농경지의 관리를 맡기로 하고 장철수, 후에와 함께 해망 방천석의 집에서 지낸다.

후에
베트남의 산간농촌에서 태어나 물밑에서 해초를 건져 팔아서 생계를 이어가다,
결혼중개회사를 통해 최인수와 결혼하여 한국으로 온다.
하지만 최인수가 별거중인 전처가 낳은 아들 둘의 양육과 갯벌일, 밭일을 요구하자
가출하여 장철수와 함께 물밑 고철을 건져올리며 살아간다.

------- My Story ☆


"해망 + 창야"

공무도하의 세상은 이 두 곳의 지방 소읍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앞서 나열된 인물들의 관계는 좁은 두 지역 만큼이나 복잡하게 얽히지만,
그 사실들은, 오로지 사실로서 담담하게 그렇게 구성된다.

해망은
미군들의 폭격 시험지로 쓰이던 외딴 섬 인근에 위치한 해안가다.
이 곳에서는 과실수가 열매를 맺지 못하고, 가축들이 새끼를 낳지 못하고, 아이들이 피부병을 앓는다.
소리없이 죽어가고 있는 이 곳은
매립과 도로 개통 등을 통해 다시 살고자 하는 소음을 발산한다. 
하지만, 이 소음은 생각만큼 널리 울리지 못한다.
아직 확신할 수 없는 이 사업지에 대한 평가는 객관이라는 가치를 들이댈만큼 안정적이지 못하고,
사기에는 쓸데없이 비싸고 팔기에는 살 사람이 없는 못난 땅으로 전락한다.
이 곳에는 떠나지 못하고 남겨진 자들만이 살아간다.

창야는
산골 마을이다.
작고 피폐한 이 지방 소읍은 여름철 폭우와 저수지의 범람으로 전국적인 유명세를 탄다.
이 곳은 노목희와 장철수의 고향이기도 하며,
두 사람이 쫓기듯 떠나온 곳이기도 하다.

공무도하의 세상은 참으로 비루하다.

기자는 비루한 세상의 메아리를 듣고도
매번 '인간적'이라는 스스로 만든 감옥 속으로 못 본 채, 못 들은 채 그렇게 빠져든다.
그럼에도 불구하는
기자는 비루한 세상을 취재하고
술과 세상에 대한 넋두리를 통한 관조로 그렇게 또 살아나간다.

에디터인 여자는 전공인 회화를 잊고 살았다.
그녀가 해야할 일은 번역이고, 에디팅이었다.
우연한 기회에 그녀는 자신이 번역한 책의 표지를 디자인 하였고,
또 그 책을 통해 찾은 우연한 기회에 표지 디자인을 위한 유학을 떠나게 된다.
기자의 넋두리를 함께하던 여자는
남자도, 에디터라는 그녀의 직업도 모두 그 자리에 그냥 둔 채 떠난다.

한 남자가 있다.
이 남자는 아귀에 힘이 없다.
이 남자는
'인간은 비루하고, 인간은 치사하고, 인간은 던적스럽다. 이것이 인간의 당면문제다.' 고 세상을 향해 외치지만
결국 학생 운동을 함께한 이들의 은신처를 고발하고 자신의 고향을 떠난다.
다 잊고 살기 위해 찾아온 새로운 장소에서 그는
그가 고발한 세상이 잉태했다 토해놓은 쇳덩이들을 주워가며 산다.

누군가 높은 이로부터 표창까지 받았던 소방 공무원인 그는
불이 난 백화점에서 반짝거리는 것들을 끌어 모아 장물애비에게 넘긴다.
몸이 좋지 못했던 이 남자는
그 길로 퇴직을 하고 새로운 인생을 설계한다.
남의 것을 갖고 말았다는 헛헛한 사실이 평생 그를 괴롭히겠지만
그는 또 다른 남의 것인 남의 신장을 통하여 새로운 생명을 얻고 또 새로운 사업을 하며 그렇게 산다.

아이가 죽었다.
아이가 자기가 기르던 개에게 물려 죽었다.
아이는 아이 엄마가 돈 벌러 가며 아이 엄마의 엄마에게 맡겼던 아이였다.
엄마는 아이를 찾지 않는다. 찾지 못한다.
엄마는 아이를 찾고 싶었으나 찾을 수 없었고,
결국엔 모른 척 그렇게 열매도 맺지 못하는 경작지를 가꾸며 살기로 한다.

공무도하의 세상이 이렇다.

세상이 이런데도

작가는 말한다.

가지 말라고.. 저 피안의 세상으로 홀연히 걸어 나가지 말고, 그냥 이대로 살아가자 말한다..

없는 곳에서도 그렇게 희망을 찾아 보자고 한다.

희망이 보이지 않는데도 작가는 자꾸 희망을 찾아라 말한다.

그래서 작가는 힘들다고 말한다.

자기 혐오에 시다릴 수 밖에 없었을 만큼 힘든 과정을 겪으면서도 작가는 한번 살아 보자 말한다.

사실.. 세상이 그렇다..

진정으로 세상이 그렇다..

세상은 정말 비루하고, 치사하고, 던적스럽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 수 있고, 살아지는 것이 또 세상이다.

세상을 향한 작가의 말처럼, 세상은 또 살면 살아진다.

희망이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이 살아지는 세상에도 희망은 있다.

그게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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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8. 19. 09:40

[감독]_이준익 감독의 영화세계

08.08.06.
CGV 월례행사인 "VIP 멤버쉽 회원에게 포인트 2배" 행사에 언젠가 꼭 한번 참여해 보고 싶었다.

매력을 느낀 배우는 아니었지만,
영화처럼 드라마틱한 결말에 관전자적 궁금증을 느끼게 된 '히스레저의 유작' 은 일찍이 마감되고 없었다.  

"님은 먼 곳에"를 보기로 했다.

보지말아야지 보지말아야지 하면서도,
spoiler로 가득 차 다 보여주고 마는 M본부 영화여행을 몇 주전 일요일에 함께 한지라 흥미는 반감된 상태였지만,
평소 이준익 감독 영화에 찬사까지는 아니더라도 만족할만한 뒷끝을 보인터라 차선책으로
"님은 먼 곳에" 가 아닌 "이준익 감독의 영화" 를 선택했다.

(딴 이야기지만, 영화 광고사들은 왜 지독한 spoiler를 쏟아버리는 걸까? 적당히 하는게 좋을텐데..
7,000원을 내고 영화관의 스크린을 설레는 마음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에게는
매번 되풀이되는 장동건의 vluu 광고가 아닌 신선한 자극이 필요하다.)

먼저 이준익 감독에 대해 알아보자.

1959.9.21 生
서울 출신이며 現 씨네월드 대표이사로 재직중이다.
세종대학교 회화학을 전공했으며 1993년 영화 '키드캅'을 통해 데뷔했다.

그가 감독한 영화는 다음과 같다. (기획, 제작 제외)

1993 키드 캅
2003 황산벌
2005 왕의 남자
2006 라디오 스타
2007 즐거운 인생
2008 님은 먼 곳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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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드 캅" 의 경우 아주 어릴 적 봤던 영화로 김민정과 정태우가 나온다는 것 정도밖에 기억이 나지 않으니 패스.
게다가 감독으로 주로 활동하기 시작한 2003년 영화 황산벌까지 10년간의 긴 텀이 있으므로 패스.

그의 영화는 일단 "다른" 주인공, "다른" 공간, "다른" 시선에 집착한다는 공통 분모를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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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황산벌",

이 영화의 목적이 역사 되짚어 보기, 역사 뒤집어 보기, 그 속의 해학과 웃음 찾아내기였던만큼
영화는 시종일관 비극적으로 전해지는 전쟁 중의 역사를 희극적으로 묘사한다.
이 영화에서 가장 눈길을 끈 것은 세기를 대표할만한 한판 전투가 아니라,
거시기로 대표되는 이문식을 위시한 조연들의 애드립과 걸쭉한 사투리, 김선아의 찢어질듯한 잔소리 열전이었다.

well made 역사극이라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실컷 웃긴 했지만 남는 것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목적한 역사 뒤집어 보기가 그럴듯하게 실현되지도 못했다.

하지만, 이 곳에서 이준익은 새로운 출발점을 갖는다.
"황산벌" 은 계백과 김유신 외에 수 많은 조연을 낳았으며, 수 많은 조연 하나하나의 눈으로 관객을 마주한다.
관객은 주연인 두 사람에게서 벗어나 의자왕, 거시기 등 많은 조연과 교감할 수 있는 기회를 맞이한다.
따라서 이 영화의 주연은 "계백" 도 "김유신" 도 아닌 그 시대 각자의 삶을 살아가던 다양한 인간 군상이다.

감독으로서 정진영이라는 persona와 시작하는 첫 여행의 시발점이라는 사실은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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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우리 모두에게 제대로 각인시킨 영화는 "왕의 남자" 였다.
"왕의 남자" 가 들려주는 비극은
"황산벌" 과 "왕의 남자" 이준익이 같은 사람이라는 사실에 적잖은 의문을 갖게 한다.
하지만, 보면 볼 수록 그 "이준익" 은 이 "이준익" 임에 틀림없다.

사실 "왕의 남자" 가 이준익 감독의 첫 작품이라 착각했으며,
그가 이전 꽤 오랜 기간 동안 영화계에 몸 담고 있었음을 당시에는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음을 고백한다.
(이전의 그는 남들은 몰라도 내게 있어서는 "봉미미" 였다.)

영화는 이전 연산군 시대를 조명한 영화처럼 연산군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비추지 않는다.
그는 그저 한 사람이다. 어찌 보면 그의 비중은 처선 "장항선" 만도 못하다.
(결국 처선은 "왕과 나" 라는 S본부의 드라마에서 주연 자리를 꿰차기도 한다.)
그는 광대의 손에 놀아나기도 하고, 광대에게 어쩔줄 모르는 질투를 느끼기도 하는 못난 사람이다.

시대의 요부 "장녹수" 역시 연산군만은 못하지만 영화, 드라마에서는 한 가닥하는 인물이다.
하지만, 그녀 역시 이 곳에서는 영화의 중심도 세상의 중심도 아닌, 또 하나의 인물이다.

이준익 감독은 "다른" 주인공, "다른" 공간, "다른" 시선을 보여주는 실험을 이제 제대로 시작한다.
이 영화에는 두 사람의 "광대" 가 출현한다.
왕을 비웃는 광대, 왕을 사로잡는 광대.
영화계의 아웃사이더, 생판 남같은 광대 "감우성" 과 "이준기" 는 마음껏 관객의 마음을 희롱한다.
카리스마로, 당당함으로, 긴장감으로, 앙칼진 눈웃음으로.
(이 영화를 통해 두 광대는 이후 지금까지 그들 자신의 필모그래피를 점차 화려하게 장식해오고 있다.)

이들 광대는 왕도 가지지 못한 자유로운 영혼과 열정이 있었다.
이준익이 전하려 하는 진정한 카타르시스는 이 영화를 통해 드디어 진정성을 갖고 관객에게 전해지기 시작한다.
영화는 "광대" 가 주인공이고, "광대의 놀이판" 이 무대고, "광대의 시선" 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왕의 남자" 역시 이문식을 대신할
유해진, 정석용 등 이준익 감독의 해학을 전할 또 다른 영혼들이 자리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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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익 감독의 걸작 중 하나인 "라디오 스타"
아날로그적 진부한 감수성을 뽐내며 코끝 찡한 잔잔한 감동으로 승부한
이 영화는 풍부한 삶의 페이소스를 연출한다.

코믹 캅스 커플 "안성기" 와 "박중훈"
이번에는 전성기 지난 찌글찌글한 스타와 그래도 그가 최선이라 여기는 어리숙한 매니저 역할로 돌아왔다.

혹자는 "진부" 라는 두 글자 틀에 이 영화를 끼워 맞추며, 혹평을 서슴치 않는다.
감독의 지긋지긋한 아날로그적 감성이 영화 곳곳에 내재한다는 악평도 있다.
그런데 어쩐다, 그것이 바로 "아날로그적 감성" 이다.
뭔가 깔끔하지 못하게 추적거리고, 걸핏하면 눈물 바람에 온갖 궁상맞은 세상사 이야기..
그 속에 삶이 있고,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고, 사람이 있다.

영화에는 청록다방 김양을 비롯한 온갖 군상의 삶이 녹아져있다.
물론 '언제나 나를 최고라고 말해준 당신이 있어 행복합니다.' 라는 카피에서 전해지는
철없는 스타와 그의 곁을 그림자처럼 일편단심 지키는 매니저의 이야기가 중심 축을 이루지만,
한물은 고사하고 세물, 네물은 더 간 자아도취적 왕년의 스타가
영월 지역민의 삶을 소개하고 그들의 삶과 애환, 넋두리를 함께하면서 재기에 성공하게 된다는 스토리는
단순한 스타와 매니저의 이야기에서 나아가 훨씬 더 많은 것을 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미 이 영화의 수 많은 조연들의 이야기는 주연을 빛내는 장치를 넘어
영화 자체를 다채롭게 만드는 하나 하나 소중한 씨줄, 날줄인 것이다.
이것이 이 영화가 단순히 "진부" 라는 말로 평가받을 수 없는 중요한 이유이며,
이준익 감독의 대표적 영화가 될 수 있는 이유이다.

이 영화.. 또 한번 잘 봐야 한다.
이병우 음악감독과 함께한 왕의 남자 역시 영화 전반에 대단한 음악적 시상이 잘 표출되어 있지만,
(그는 정말 대단하다. 당시 화제를 일으킨 왕의 남자, 괴물, 호로비츠를 위하여.. 이 모든 영화의 음악감독이었다.)
앞으로 전개될 이준익표 영화의 또 하나 특징 "음악" 을 수면위로 대놓고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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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인생" 은 이준익 감독의 아날로그 시리즈 연작과도 같은 작품이다.
이곳에는 피곤한 가장이 너무나 많다.

그들은 피곤하지만 큰 소리 한번 칠 수 없는 가장들이다.
이들 역시 다른 영화들에서 주인공 행세하긴 힘든 인물들이다.

선생인 마누라에게 얹혀살면서 큰소리 한번 제대로 못 치는 놈,
기러기 아빠로 살면서 보고싶다는 전화 통화 만으로 가족의 존재를 (동시에 부재를) 확인해야 하는 놈,
퀵 서비스에 대리 운전에 자식들 학원비때문에 몸이 부서져라 뛰어 다녀야 하는 놈,
젊디 젊지만 밴드하던 아버지 밑에 남은 것이라곤 열기 하나밖에 없는 그나마도 있던 아버지 마저 잃은 어린 놈..

이 불쌍한 네 존재가 이 영화를 이끄는 힘이다.
(힘이라고 하기에 그들은 너무 무력하고 존재감이 없다.)

모르겠다. 그냥 한번 저질러 볼란다. 뭐 어떻게 되겠지. 나도 좀 나 하고 싶은대로 한번만 살아보자.
더도 말고 한번만 좀 나 좀 내버려둬라.
이들은
철없지만, 왠지 내 곁을 몇 번 스치며 지나갔을 법한
아니면 회사 내 옆자리를 차지하고 앉았을 법한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익숙한 철부지 아버지들이다.

밴드 이름은 기가 막히다. "활화산", "an active volcano"
아, 기가 막히다.
정말 액티브한 기운이 넘치고, 살아 숨쉬는 몇 줄기 붉은 화염이 폭발할 것만 같다.
힘없던 이 이들은 과거의 락밴드 "활화산"을 재결성한다.

그리고, 이 아버지들은 어울리지 않게 예쁜 문신까지 새겨가며
인생의 열정을 되찾고 나름의 해피엔딩을 맞이한다.
(아, 사적인 감정이긴 하지만 나.. 배우 김윤석의 부스스한 머리와 때깔 없는 사투리가 너무 좋다.)

이준익 영화에 다시 한번 출연한 persona 정진영은
그의 영화 속에서 늘 그렇듯
주연이되 조연이며, 조연이되 주연이다.
그는 영화 전반의 완급을 조절하는 힘을 휘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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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현재진행형의 종착점에 이르렀다.
"님은 먼 곳에".. 정말 먼 길을 돌아 이제 "님은 먼 곳에" 에 도착했다.

이 영화는 날카롭게 말해 감독이 원하는 것에 훨씬 못 미친 영화다.

이준익 감독은 이 영화에서
베트남전쟁에 참전했던 남성이 아닌 그 남성에 의해 남겨졌었던 여성의 시각을 통해
전쟁과 그에 수반된 여러 일련의 사건들을 그리려 했다.
그리고 그 의지는 나름대로 관철되어 나쁘지 않은 결과를 가져왔다.

하지만, 거기까지 족했다.

"니 내 사랑하나?" 로 시작되는 사랑에 대한 끝없는 의문과 고민은
이 시대 오히려 너무 낭만적이었을테고,
남성중심적이었던 세상에 대한 여성의 통렬한 비판을
마지막 장면의 따귀 몇대로 산정하기에는 지극히 부족함에 틀림없다.

이 영화 속에서 관객은 차라리 "왜?" 라는 의문을 지워야 한다.
사랑하지 않는 남편을 찾아 무작정 베트남에 이르렀던 이유도,
남편을 찾아간 세상에서 오히려 남편이 아닌 수 많은 남성의 욕망의 대상이 되었던 이유도,    
왜 하필 김추자였는지도,
남편을 만나 따귀를 철썩철썩 때려야만 했던 이유도..
그냥 묻어둬야 한다.

이 영화는 그다지 친절하지 않다.
친절하고 싶었는데, 할 말이 없어 친절하지 않았던 것일 수도 있다.

한편으로 영화는 트릭에 가득 차 있다.
영화는
혹시 "님을 먼 곳에" 라는 주제가를 먼저 산정한 것이 아닐까 의문이 생길만큼 스토리 구조가 촘촘하지 못하다.
(그래서 남편 상길을 베트남으로 보내 버린 것이 아닐까? 님이 멀리 있어야만 하니까.)
또 이 영화는
혹시 무작정 "수애" 를 주연으로 내세우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의문이 생길만큼 스토리 구조가 촘촘하지 못하다.
(노래 부르고 춤추면서 수애, 순희, 써니는 영화의 50% 이상을 짊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3가지 아날로그 음악 연작 시리즈 중 가장 긴 여운을 준다.

"김추자 할까요?", 김추자의 "님의 먼 곳에" 가 그렇고,
써니의 빨간 원피스가 그렇고,
"니 내 사랑하나?" 가 그렇다.

이준익 특유의 "다른" 주인공, "다른" 공간, "다른" 시선이 적나라하게 묘사되어서 일게다.

엔딩이 닥쳐오는 시점에서 나도 모르게 몇 방울의 눈물을 떨구고 말았지만,
왜? 라는 의문을 갖기 전에,
여성성이 남성성에 대해 분노를 표출하는 따귀를 생각하기 전에,
그냥 좀 "그녀" 의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여유를 갖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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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7. 8. 14:47

[만화]_캔디, 그녀와 그녀의 남자들

제목 : 캔디캔디
작가 : 미즈키 교오코
일러스트레이터 : 이가라시 유미코
국가 : 일본
저작년도 : 1975년
출판사 : 하이북스
출판년도 : 2001.04.30
총권 : 9권 완결


* 캔디캔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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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캔디스 화이트 아드레이 (캔디)

명랑 발랄. 개구쟁이며 장난꾸러기지만, 타인을 끌어당기는 매력의 소유자.
트렌디 드라마 주인공의 전형인 캔디 캐릭터 발원지.
"이게 정말 현실일까?" 라는 말을 자주 되뇔 정도로 행운이 잦지만,
한편으로 사랑하는 많은 사람을 떠나보내는 저주스러운 운명도 지녔다.
자신에게 주어진 행운을 걷어차고 스스로의 길을 개척하는데,
성바울 학원, 종군간호사 등에서 볼 수 있듯이 자주 포기하는 모습도 보이며 나약한 면도 많다.  
사랑에 있어서도 언덕위의 왕자님 → 안소니 → 테리우스 → 알버트 등
진득한 면을 보이기보다 그때 그때 감정의 컨트롤을 유지하지 못하는 설익은 사랑의 소유자다.
캔디가 처음 안소니를 좋아했던 이유가 무엇인가?
추후 안소니의 정다움에 반한 것도 있지만, 어쨌든 시작은 언덕위의 왕자님을 닮았기 때문이었다.
다음으로 테리우스, 이번엔 테리우스의 옆모습이 안소니의 그것과 비슷하여 사랑이 시작되었다.
누군가를 누군가의 모습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과거의 누구를 통하여 관계를 시작한다는 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 여담이지만, 진정으로 안소니를 사랑했다면, 진정으로 테리우스를 사랑했다면,
    또 다른 사랑이 찾아올 여유가 있었을까?
    어린나이에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다고 과부로 살라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말이다.



* 캔디캔디의 남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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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덕위의 왕자님, 알버트, 윌리엄 아드레이

세 캐릭터가 같은 사람이라는 스토리 구도, 이 만화에서 가장 허술한 캐릭터다.
캔디는 첫사랑처럼 언덕 위의 왕자님을 기억한다. 당시 6세.
그는 "우는 것보다 웃는 것이 예쁘다." 는 말만 남기고 사라진다.
이 첫사랑은 그와 닮았다는 이유로 안소니가 캔디의 사랑을 받게되는 계기를 마련한다.
이후 그는 아주 가끔씩 추억처럼 캔디의 가슴 속에 남는다.
알버트. 그는 캔디에게 이웃집 오빠같은 존재다.
힘들때 의지하고 찾아가서 위로받는. 하지만 사랑이라는 감정으로 표현하기에는 너무 멀다.
그는 자연과 동물을 사랑하고 바람처럼 떠돈다.
어설픈 분장으로 자신의 얼굴을 변장하기도 해서 등장할때마다 약간은 다른 모습이다.
그는 기억상실이라는 또한번 통속적인 설정속에 캔디의 병원에 실려오는데
캔디는 그에게 받았던 고마움을 갚기 위해 그를 돌보지만, 돌봄을 받는 경우가 더 많다.
마지막으로 윌리엄 아드레이 할아버지.
그는 언덕 위의 왕자님이며 알버트며 윌리엄이다.
결국 캔디가 그에게 정착하게 되는 데에는
크게 사랑하지는 않지만, 돈 많고, 여유 있고, 자신을 잘 돌봐줄 수 있는
말 그대로 편한 남자를 남편으로 맞아들이는 대부분의 여자들의 삶이 투영된다.

... 키다리 아저씨 캔디캔디 버전. 정말 너무했다 싶을만큼 설정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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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소니 브라운 (안소니)

복잡한 집안 배경에 따라 늘 같이 어울려 다니는 친척과 달리 성이 브라운이다.
알고보면 그는 윌리엄의 외조카다.
따라서 캔디가 안소니를 보며 언덕위의 왕자님을 떠올린 것은 당연하다.
그는 장미 품종 개량에 지대한 관심과 능력을 보여주는
굉장히 농촌스럽지만, 잘생기고 따뜻한 메트로섹슈얼한 남자다.
2000년대 초반 인기 끈, 최근 다시 유행하는 다정한 남자의 표본.
알렉스가 신애에게 화분을 주며 인기를 끈 것도 안소니의 새로운 버전으로 보인다.
안소니는 여우사냥에 나갔다가 캔디의 여우 목도리에 어울릴만한 여우를 발견하고
뒤를 쫓다가 덫에 걸려 말에 떨어져서 죽는다.
유순한 그의 캐릭터에 비해 다소 어이없고 덧없는 죽음이다.

... 나이든 뒤 보기에 안소니는 너무 유약한 딱 첫사랑 캐릭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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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리우스 그레이엄 그란체스터 (테리우스)

긴 이름에 걸맞게 그는 영국의 귀족이다.
하지만 그는 정통적 성골 출신이 아닌 사생아다.
미국의 톱 연극배우인 엘리노어 베이커와 귀족 아버지 사이에 태어난 그는
어머니의 피를 이어받아 대단한 미남이지만,
어머니의 사랑에 목말라하고, 반항아적 기질을 지녔다.
일반적으로 테리우스라 불리는 현실 속의 이들.. 신성우, 안정환 등에 비해
캔디의 진정한 사랑이었던 그는 선이 곱고 생각이 많은 캐릭터다.
그에게서 볼 수 있는 가장 매력적인 모습은
캔디의 쾌활한 모습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세익스피어를 사랑한다는 점이다.
그는 스잔나의 맹목적인 사랑에 결코 화답하지 않았지만,
불의의 사고로 스잔나가 다리를 잃게 되자 그녀를 책임진다.
진정으로 캔디를 사랑하였기에, 캔디 없는 삶에서 그는 무너지지만
캔디의 마지막 인사를 통해 다시 힘을 얻고 살아간다.
그는 남성적인 로맨티스트로 모든 여자들의 로망과 가깝다.

... 테리우스는 이상향이다.
    따라서 그와 결말을 맞이하는 것보다는
    그를 마음에 묻는 것이 더 아름다울 것이며,
    때때로 가슴에서 찾아낼 추억으로 간직하는 것이 더 애틋하고 소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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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치볼트 콘웰 (아치)

아치는 매력적인 남자이다.
하지만, 그는 제멋대로이기도 하고 너무 멋을 많이내는 부담스러운 남자이기도 하다.
캔디의 가장 소중한 친구 애니 브라이튼은 아치를 너무나 사랑해
캔디에게 사랑의 감정을 가진 아치때문에 캔디를 질투하고 멀리한다.
결국 아치는 캔디를 친구이자 친척으로 받아들이고
애니와 다정한 사랑을 키워간다.
그는 끝까지 캔디의 친구로 남아 캔디가 힘들때마다 도와준다.
여자친구 같이 속 얘기를 털어놓을 수 있을만한 그는 그런 친구다.

... 아치볼트와 아리스테아는 콘웰이라는 성을 가졌다.
    미국에서는 모르겠지만, 영국에서 콘웰은 대단한 지위를 가진 귀족이다.
    작가의 의도였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
    현재 영국 찰스왕세자의 부인인 카밀라가 콘웰 공작 부인이라는 작위를 갖고 있다.
    영국의 왕세자는 왕위 계승 서열 1순위 이면서 콘웰의 공작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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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리스테아 콘웰 (스테아)

항상 밝고 발명에 몰두하며 무엇인가에 늘 빠져있다.
실패를 거듭함에도 포기란 있을 수 없고, 뛰어난 재능을 지닌 천재다.
비록 그가 수많은 수행착오를 겪는다 해도 누구나 그의 편이 될 것이다.
스테아는 안소니, 아치와 마찬가지로 캔디를 사랑했다.
하지만, 캔디의 마음이 그에게 있지 않음을 깨닫고 깨끗이 포기한다.
대신 뒤에서 캔디의 아픔, 고통을 함께 나누며 달래준다.
어찌보면 캔디의 많은 남자 캐릭터 중 가장 쿨하고 미래지향적인 캐릭터일지 모른다.
그는 새롭게 찾아온 사랑인 패티를 그 나름의 방법대로 사랑하며,
세계대전에 참전하여 마지막을 맞이하면서
그녀에게 아름다운 노을을 보여주고 싶다는 센티한 마지막 말을 남긴 로맨티스트다.
진정으로 캔디의 행복한 바라는 돋보이는 또 하나의 사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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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보라별 2008.07.25 22:30 address edit & del reply

    초대장 신청하러 왔다가 구경하고 갑니다.
    전 안소니가 죽었을때 정말 많이 울었던 기억이 나네요- 어린맘에 어찌나 슬프던지, 왜 말에서
    떨어지면 죽는걸까, 심각하게 생각하고 또 생각했더랬죠. 사실 그때 너무 슬퍼서 캔디를 좀 멀리했던 기억이.. ^^;